지금은 예측불허의 불확실성이 지배적인 기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우리가 풀어가야 할 몫이다. 과거의 음영이 여전하고 오늘의 해결해야 할 사안은 사뭇 힘에 부친다. 과거 타령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오늘을 살 수 있으련만, 많은 것들이 짙은 밤안개처럼 불투명하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 우군도 없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시 57:1-2절에 나타난 신앙은 일상과 일터에 쌓은 영적 내공에서 나온다. 고난의 깊이가 더할수록 쓸 카드는 단순하다. 은혜(헤세드)를 구하는 기도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헤세드)을 장착하는 것밖에 없다. 부당한 일을 당했고 그 원인을 규명했다면, 공평과 정의를 두르신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다(3절).
2. 정신을 차리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악조건은 어떤 관계인가?
은혜(헤세드)를 힘입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 냉정한 판단을 한다. 합리적으로 따진다. 거리를 둘 수 있다. 긴 호흡으로 장기전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시인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치밀하게 준비된 악행이기 때문이다(시 57:6). 시인의 마음공부가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7-10절이다.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즉, 진심(瞋心, 자기만큼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과 치심(癡心, 자신이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다루며 극복하는 일이다. '광야적 영성'이나 '영혼의 어두운 밤'을 체험한 신앙은 우리의(공동체) 마음을 '큰 확신과 담대함'으로 이끈다. 확정된(steadfast) 마음은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받으며 노래와 찬송을 낳는다. 고난을 겪은 신앙은 새벽을 깨울 정도로 새날에 대한 갈망으로 충만하다(7-8절). 만민이 보이기 시작하고 열방(나라들)까지 그림이 그려진다. 인자(헤세드)와 진리(에메트, 신실함)로 우주적 광휘(光輝, brightness, splendor)의 찬란한 광경을 그려낸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제이고 현실이 될 새벽의 노래다.
3. 빛없는 동굴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실효적인 일인가?
목소리(voice, 항의)는 '가치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가치를 새겨가는 과정이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다. 자기인식(정체성)이란 자신의 살아진 삶(lived experience, 체험)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하는 능력이다. 시인은 동굴에서 수없이 자신과 하나님 및 고통의 상황에 대한 질문과 의문을 던졌을 것이다. 진지한 질문은 나의 삶과 무관할 수 없고, 호기심도 아니다. 나의 삶을 걸어야 하는 것이 질문과 의문이다. 의문은 타인이 아니라 나를 향해 던지는 것이고 답도 내가 찾아야 한다. 아무것이나 묻는 것은 경박한 질문이고 피상적인 의문이다. 성찰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질문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연루되지 않은 질문은 종종 '연민'에 빠지고 '자기만족'으로 끝난다. 성찰이 필요한 시대는 존재를 건 '물음의 가치'를 필요로 한다.
시 57:5 ,11절은 생명을 건, '살아낸' 체험의 소중한 산물이다. 인자와 진리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궁극적인 선언이자 지존의 외침이다. 시인은 빛없는 동굴에서 세상을 뒤집어 새롭게 할 하나님의 통치를 요청한다. 세상은 '인자와 진리'(헤세드와 에메트)로 다시 정위(定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