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영생은 하나님과 그 아들을 아는 것인데(3절), 하나님과 예수의 언약적 요구를 실천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실천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실재다.
영생의 목적은 하나님과 예수의 구원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는 생명의 소진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영생비전을 이룬다.
영생은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집행하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이다.
<산 앎>
제자들이 세상과 뚜렷하게 대비(대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께서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8절).
제자 공동체는 들려주신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 복음에 '민감한 수용성'을 나타냈다.
교회가 말씀을 받게 되면 세상의 미움을 독차지한다(14절). 세상과 적대적 긴장 속에서 살게 된다.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로 결속되면 보냄받은 자로써 세상과 '창조적 불화 상태'가 된다.
<거룩>
이스라엘은 독보적인 하나님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무서운 격차와 부정한 죄인을 참아내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긋기를 알았다.
죄를 견딜 수 없어 하는 하나님의 자기보존 의지, 하나님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영적 폭풍 방출을 본다.
다른 측면에서 하나님의 거룩은 부서지고 망가진 인생들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신적 제한을 풀고 우리를 가까이 오도록 한다. 거룩은 하나님이 무제한으로 우리를 향해 내려가시는 것이다.
<하나됨>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 될 때 예수는 하나님께 보냄받은 독생자임을 세상이 알고 믿게 된다(21절).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교회의 모습에서 세상은 ‘예수가 이 사람들 안에 있어서 계급적 인종적 성적 차별을 극복하고 만민을 하나 되게 하는 능력이 작동하는구나’라고 믿을 수 있다.
성령의 새로움(성령충만) 안에서 감화감동 받으면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게 된다.
서로 판단하고 질투하며 지리멸렬한 공동체가 하나 될 때, 세상은 '다양성 안에서 조화'를 꿈 꾼 예수의 세계비전을 보게 된다.
<통치력>
다스림(권세)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공정한 통치를 선사하기 위함이다. 예수는 만민에게 영생을 선물하려는 과업(사명)에 자신이 백퍼센트 순종할 수 있도록 간구한다.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해야만 통치 받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나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영생비전에서 멀다.
약탈/식인 자본주의를 단번에 영생 공동체로 바꿀 순 없다. 먼저 지도자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사람들이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