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육신은 구원의 축
부활은 인간 전체를 포괄한다. 인간의 영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단일체(단일성)로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한 인간은 다른 이들 없이는 도무지 인간이 될 수 없다.
너 없이는 내가 될 수 없다. 인격으로 산다는 것은 관계 안에서 산다는 말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타자를 경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옥은 자기 밖에 없거나 자기 밖에 모르는 곳이 된다.
부활이란 한 인간 전체가 완전하게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다. 자신의 첫 입맞춤, 첫 눈(눈)과 함께 그리고 반려동물이 내 삶의 일부였다면 그와 함께 했던 애착과 충실도 함께 부활할 것이다.
죽마고우(베프)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도 개인 부활의 일부가 될 것이다. 우리의 온 역사와 작은 세계가 사라지지 않고 부활할 것이다.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살았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통한 정화와 변모 속에서 영원한 삶의 재료가 된다.
2. 새 예루살렘 도성
모든 국가주의를 뛰어넘어 글로벌(범세계적) 새 사회가 될 것이다. 시온으로 가는 민족들의 순례라는 예언자들의 약속이 실현될 것이다(사 60:5,11). 부활은 개인만이 아니라 모든 역사, 온 우주가 연결된 사건이다. 새 도성에는 더 이상 성전이 없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도성의 중심이고 빛이다. 우주적 주기에 따른 시간이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이야말로 새 도성에서 일어나는 일의 절대적 정점이다. 누구나 하나님을 볼 수 있는데, '본다'의 지성적 인식 그 이상으로 경험한 것, 내재화, 참여, 사랑을 의미한다. 새 예루살렘은 위기와 혼돈, 핍박을 헤쳐 나간 새로운 사회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는 온 우주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백성과 연결되어 있고, 그 백성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3. 영광에서 영광으로
죽음 이후에 각 개인의 역사가 '한데 모이는' 일이 지상적 시간 너머로 일어난다면 세상의 온 역사가 '한데 모이는' 일도 일어난다.
죽은 이는 더 이상 지상적 시간에 매이지 않고 그/그녀의 죽음에서 ‘이미’ 죽은 모든 이들의 부활에 도달한다. 이때 죽은 사람과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그 사람은 동일한 영혼이다.
천상에서는 모든 영혼이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선물로 주는 일에 영원히 몰두한다(C.S. 루이스)
부활신앙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무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다. 바울도 피조물 전체의 해방을 언급했다(롬 8:19-22).
인간 이외의 모든 피조물은, 믿는 이들이 부활에서 선물로 받게 되는 것 안으로 함께 받아들여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참여하고 함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복된 참여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서 '서로 함께 함'은 천상에서도 이어진다. 그렇지만 자기 공동체만의 경계를 넘어 끝없이 확장되어야 한다.
하나님 경배(예배)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탄원이나 청원은 '나의' 비참함이나 '나의' 고통이 계기가 된다. 심지어 하나님께 감사도 '내가' 받은 것에 대한 반응이지만, 하나님 경배(예배)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독보적인 특징이 있다. 경배(예배)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는 헌신이다.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니, 경배의 시간 속에서 이미 지금 영원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 경배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세상을 향해 온전히 열려 있는 영원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