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스도인(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것(of)으로 부르심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 혹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표현한다(롬 1:6-7). 요한은 '위로부터' 생명을 가진 자(받은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얘기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서 선한 행실을 가진 자로 말한다. 야고보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1:2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 토라의 육중한 전통 속에서 사람의 길은 쉐마의 길, 즉 들음과 경청이다.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지혜를 통해 정행(正行)을 위한 치열한 질문과 성찰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예언자의 가슴(pathos)이었다. 토라, 지혜, 예언자의 심정이 삼각 편대를 이루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만나 새로운 융합과 내재화를 통해 자신의 복음이 되었다.
야고보는 토라.지혜.예언자의 영적 전통 속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 있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고 봤다. 토라로 연습된 경건의 능력은 토라(말씀)의 본질과 성격을 다시금 환기시켜 준다(1:22-25). 야고보는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말씀을 듣기만 하면 잊어버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말씀은 몸으로 구체(具体)되는, 창조하는 사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왜 중대한 사안이 되는가? (2:1-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사람을 있고 없음으로 구별하고 나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런 차별이 생긴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꼴이 된다(2:5). 하나님은 왜 가난한 자를 향해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있을까?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상속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중심적 욕망을 제어하는 힘'이다. 사랑은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고 남의 처지에 귀기울일 줄 아는 '수용성'이다. 최고의 토라는 도움을 청했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것이다(2:8). 토라는 '모두가'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공동체를 설계했다(2:12). 차별하지 않는 것이 긍휼(자비)을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