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
압살롬은 외모와 언변 등 여러 모로 보나 다윗도 질투하거나 경계할 만한 흡인력 있는 인물이었다(삼하 14:25-27). 사무엘하 13-19장은 사실상 암살롬과 관련한 이야기다.
왕위 계승자인 맏형 암논의 치명적인 실책(이복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 한 것)은 압살롬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압살롬은 암논 제거작전을 주도했고 모살을 지시했다.
암논 시해 사건으로 압살롬은 다윗에 의한 격리(3년)와 배제(2년)를 당해야 했다. 이는 압살롬의 분노와 한(恨)을 쌓이게 했고 피에 굶주린 압살롬은 모반(쿠데타)을 일으켰다. 소외는 복수를 낳고 화해는 원한을 멈출 수 있는 힘이다.다윗: 믿음과 약삭빠름
(삼하 15:1-16:14)
<압살롬>
압살롬은 외모와 언변 등 여러 모로 보나 다윗도 질투하거나 경계할 만한 흡인력 있는 인물이었다(삼하 14:25-27). 사무엘하 13-19장은 사실상 암살롬과 관련한 이야기다.
왕위 계승자인 맏형 암논의 치명적인 실책(이복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 한 것)은 압살롬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압살롬은 암논 제거작전을 주도했고 모살을 지시했다.
암논 시해 사건으로 압살롬은 다윗에 의한 격리(3년)와 배제(2년)를 당해야 했다. 이는 압살롬의 분노와 한(恨)을 쌓이게 했고 피에 굶주린 압살롬은 모반(쿠데타)을 일으켰다. 소외는 복수를 낳고 화해는 원한을 멈출 수 있는 힘이다.
<잇대>
다윗은 외국계 측근 잇대가 망명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도록 명한다. 외국인으로 정처 없는 떠돌이로 또다시 살아갈 것을 염려한 것이다. 은혜와 진리(Hesed & Emet) 안에 있기를 구한다. 평소 다윗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묻어나온다.
외국인 잇대의 충성 서약을 받은 다윗은 후일에 그를 세 명의 총사령관 중의 하나로 임명한다(18:2). 다윗은 엄청난 격랑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헤세드(은혜와 자비)에 의탁할 줄 알았다.
<사독과 아비아달>
다윗은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법궤와 함께 왕궁에 남아 있으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면서도 다윗은 생각하고 계획했고 대책을 수립했다.
다윗의 현실주의는 제사장들이 광야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에서 첩보원으로 남게 했다. 종교 지도자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다윗은 냉혹한 정치적 현실을 깨닫고 뼈 아프게 울었지만(15:30), 고위급 관료(아히도벨)의 배반을 판단해 달라고 기도했다(31절). 경건이냐 현실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모두가 중요하다!
<후새와 시바>
다윗은 경건과 자신이 처한 현실(정치적 득실)을 같이 묶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아히도벨과 같은 수준의 고위 관료 후새도 후방에 남겨 압살롬의 자문위원이 되어 달라고 제안한다.
압살롬의 핵심 관계자가 되어 31절의 기도가 성취되도록 전략을 짠다. 치밀하게 왕궁 내부의 정보 조직망을 구축한다(35-36절).
시바에게 경거망동하게 말한(16:3) 므비보셋의 토지를 박탈 하여 넘겨주어 사울파의 잠재적 위협을 제거했다.
<시므이>
다윗은 목숨 부지를 위한 망명길에서 사울파 변절자의 엄청난 저주의 막말 공격을 받는다. 시므이는 다윗을 향해 ‘사울 집안의 피를 흘린 자’(16:7-8)로 특정하고 정죄한다.
다윗은 지금의 반란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므이의 저주 막말을 참을 수 없었던 최강 충성파 아비새의 열혈성 테러 제안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모반세력과 사울파의 연대의 구실을 굳이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시므이의 저주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고 믿었다. 다윗은 난관에 봉착해도 '수용(받아들임)과 기다림'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
공적인 업무 성과로 성취감을 맛보지만 관계가 어려워진 경우나 공적인 요구와 가족/지인으로서의 애절함(감수성)이 얽혀 있을 때 어떻게 해소하는지 서로 나눠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