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하지 않음>
다윗은 사울의 참혹한 죽음(서거)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11-12절). 오히려 다윗은 비애를 표현했고 아말렉 사람의 기대는 처형으로 끝났다(15절).
다윗은 이방인의 손에 죽은 사울의 수치와 불명예를 생각하여 슬퍼했고 그것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피 값은 아말렉 사람 몫이다(16절). 다윗의 진실성, '토마토 리더십'의 진수를 본다.
<깊은 애도를 명함>
다윗의 애도시는 솔직하고 맑은 슬픔을 나타낸다. 비록 갈수록 사울과 꼬여만 갔지만 다윗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살았고, 요나단과는 생명을 줘도 아깝지 않은 베프 중의 베프였다.
다윗의 추도시에는 공동체 전체가 국치(國恥)의 쓰린 시간을 겪고 있음을 담고 있다. 왕위 계승자로서 다윗의 행보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다윗에게는 슬픔이 가장 중요했다.
사회적, 공동체적 슬픔의 가치를 상실한 곳에 여과 없이 애통하며, 있는 그대로 비통해 하는 '새로운 시간' 속으로 초대된다.
<용감한 리더십>
다윗의 추념시에서 보듯이 칼에 피가 묻어나고 화살이 적군의 심장을 관통하는 등 잔인한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은 용감무쌍하게 진두지휘했다.
부자(父子)의 위대한 협업은 그들의 약함과 흠결을 덮고 나돌던 무수한 소문을 일단 멈추게 한다.
슬픈 애도가 있는 곳에는 올바르고 맑았던 두 사람의 전성기를 충만하게 알리고 기념하도록 돕는다. 사울과 요나단의 상처와 무례와 몰염치를 초월하게 만든다.
<망자(亡者)를 거명함>
죽은 자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꾸준하게 언급한다는 것은 애통과 상실의 고조(절정) 너머로 어떠한 결단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슬픔을 충분히 다루고 진지하게 헤아려 보았다. 사울과 요나단의 불행을 자신의 사익 추구에 사용하지 않았다.
다윗은 '삶의 한계' 앞에서 적절하고도 신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우리는 다윗의 언행을 통해 공적인 슬픔을 공동체적으로 승화하고 처리할 수 있는 범례를 본다.
<새롭고 산 길>
우리 시대에도 슬픔과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맑은 담대함으로 부르는 진솔한 노래가 절실하다.
패배와 과오를 얼버무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무서운 침묵’을 피해야 한다.
상처와 참패를 수용할 때 새로운 시작이 깃든다. 뻔뻔하고 무모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자들이 나대는 무지와 우매의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지금은 우는 자들과 같이 울 수 있는 자들이 만들어 갈, 샬롬의 희년 세상을 마중 나갈 카이로스(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