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의 과잉>
1. 삼손이 은혜의 선물로 태어났다고해서 자동으로 은혜 안에서 강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볼 순 없다. 삼손이 나실인의 규칙을 믿음으로 순종하려면, 수신(修身)을 통한 극기(克己)의 쉼 없는 자기 수련이 필요하다.
2. 그가 타고난 체력과 에너지에 하나님의 기운(루아흐, 영)까지 받았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야 한다. 받은 것이 많으면 잃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굳어진 마음과 고집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상대화 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
<약함의 신비>
1. 인간의 취약성(vulnerability)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태를 낳는다. 자신의 힘으로 살다가 사고를 쳐봐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한지 안다.
2. 충동(혈기와 욱하는 마음)을 참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약함의 벼랑 끝에서 모든 힘이 빠지고 사면초가로 쪼그라든 비참의 지경까지 가봐야 은혜의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다.
<존재와 행위>
1. 성과(결과)를 냈다고 해서 반 인격과 성품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괴리가 생길 수 있다.
2.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알아차려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균형을 잡는 과정이 아름다운 인생이며 영적인 삶이다. 삼손처럼 외적인 이득을 얻었지만 내적으로 손실과 망가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동체의 중요성>
1. 영웅과 명망가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도자에 대한 추앙과 추종 일변도를 뼈아프게 겪어 본 후, 안전하게 오래 갈 수 있는 길은 지체들(공동체) 속에서 동네 아저씨/아줌마처럼 묻어서 가는 것이다.
2. 느리고 더디지만 공동체의 지혜(집단지성)를 믿어야 한다. 개인기 위주보다는 팀플레이 능력을 더 키우고 ‘모든 신자들의 깐부화’를 해야 한다.
<죽음으로써>
1. 자기 확신과 하나님의 뜻이 서로 충분히 무관(無關)할 수 있다. 사적 욕망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결과, 삼손은 ‘유명무실한 사사’로 막을 내린다.
2. 두 눈마저 뽑힌 삼손이지만 은혜의 임재를 상징하는 머리털이 자라고 있다. 삼손은 욕심과 집착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했던 세월을 자신의 죽음으로써 갚고 회복하려고 한다.
3. '죽음에 넘겨짐으로 생명을 가져오는' 십자가의 방식이 삼손에게서 어렴풋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