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
양극화와 자산/소득의 불평등은 주어진 것이고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세계관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자유'를 그 대안으로 천명한다.
'출애굽의 신학'은 정의와 자비의 정치를 통해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에 물음을 던지며 재구성(해체)을 시도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유에 걸맞은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려고 깃발을 들었다.
<참된 비판>
찐 비판은 트집을 잡거나 억지로 비난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제국의 이야기는 가진 자들의 기득권 옹호에 불과하지만, 되레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선전한다.
제대로 된 비판은 생명 살리는 성숙한 시선이자 온전한 대안의식이다. 진정한 비판은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그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하나님을 기득권 카르텔을 지켜주시는 분으로 전락시킨 신학과 인간을 노예화 하는 사회학을 정면으로 비판함이 마땅하다.
<길을 여는 애통>
진실한 비판은 애통하고 애도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탄원은 세상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애통은 푸념이나 체념이 아니다. 아픔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애통과 울부짖음을 배웠다. 이스라엘의 애통은 무엇이 잘못되어 돌아가고 있음을 강력하게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탄식을 들어주고 응수해 주기를 기대했다. 애통은 역사의 새로운 문을 열며 정의와 자비의 역사적 전진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한다.
<속수무책>
이집트 제국 전역에 큰 울부짖음이 있었다(출 11:6). 애굽의 견고한 제국 시스템이 처음 난 것과 통치자의 맏아들의 죽음을 막을 순 없었다. 애굽으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얻지 못했다.
평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이집트 사회, 현상유지의 신들, 불의와 무자비의 정치에 대한 종언을 알리는 울부짖음이었다.
<새로운 현실 속으로>
진실한 애통은 과거의 옛 현실이 우리를 낙망으로 내몰았던 그 자리에서 소망의 인내로 다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의 현실을 볼 수 있게 한다.
교회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산을 옮기며 물 위를 걷는다.
좁은 길을 가는 교회는 자유로 충만하신 하나님을 알며 그분께 순종하며 부르짖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는 분이며 현실을 간파하는 분이며, 약자를 편드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