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취약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식량독점을 위한 과도한 벽돌 생산량 요구에서 벗어났다. 이들에게 광야는 애굽의 확실성과 예측 가능성에 의존했던 것에서 떠나,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자유'를 선택한 셈이다.
자유의 기쁨도 잠시 불안이 깃들고 안전했던 옛날의 시스템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광야는 새로운 시작(환경)이라서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위해 '냉정한 사고와 과감한 행동'을 해야한다.
<밖으로 쫓겨나고>
광야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명유지에 필요한 빵, 고기, 물이 없는 가장 불안전한 곳이다.
애굽의 압제와 폭압보다 더 그리운 것은 믿을 만한 식량공급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이 점점 더 커졌을 때, 하나님은 광야를 빵이 넘치는 곳으로 만드시고 예측불허의 풍성한 선물로 응답하셨다.
<두텁게 상상하고>
광야에서 하나님에 의한 풍성한 식량 공급은 애굽의 약탈적인 시스템과 같이 갈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인간에 의해 다툼과 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에, 모두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광야에서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선을 위한 삶의 방식이 요청되었다. 안식일(법)은 공동선 구현의 새로운 사회계약이며, 생명유지에 필요한 것을 선물로 받음을 천명한다.
'애굽의 길'을 거부하려면 이 땅에서 변혁적인 삶의 방식을 꿈꾸고 고안해야 한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이웃의 중요성을 영구 순종하려는 '위험한 결의'다.
<큰 목소리로 요구하고>
노예적 자유는 애굽의 통치에 침묵하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저항과 불만은 폭발하게 마련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했던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광야는 분노, 좌절감, 이의제기, 희망이 뒤섞인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광야는 '새로운 소리'를 학습하는 곳이다. 광야는 불평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위험한 믿음의 길>
광야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내재화하는 곳이다. 애굽이 주는 거짓 확실성을 유월하여 광야에서 신실한 하나님이 주실 새로운 선물을 소망하는 '믿음의 이야기'를 쌓는다.
광야는 두려움을 너머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스리는 곳이다. 이 길은 위험천만하지만 아멘이신(신실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상처와 슬픔을 꾸밈없이 말할 용기와 자유를 맛보아 알게 한다.
<부요함의 진리>
'부족함의 세계관'을 고수하면 하나님의 넉넉한 베푸심이 무효화되는 세상이 된다. 반대로 후한 베풂으로 살면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야기되는 폭력(약탈)의 패턴이 깨진다.
새로운 부족함은 ‘더 많이, 더 필요해’를 추구하는 제국의 이야기이며, 불안의 이데올로기적 소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이라는 '진리'를 알면서도 부족함이라는 '거짓'에 빠져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함의 세계관(시스템)에서 벗어나 후한 넉넉함의 진리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신다. 부족함의 제국 이데올로기에서 나오라고 부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