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평화를 짓다(갈 3:28)
하나님 나라는 '만물의 회복'을 구현하려는 하나님의 열심 있는 통치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은 사랑과 자유의 조화, 자비와 정의가 서로 교호(交互)하며 시간과 공간 및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모두'가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회(공동체)를 원하신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리자(agent)요 그 첨병과 첫 맛으로 부름 받은 '동지적 결사체'다.
교회는 계급, 민족, 성별로 나눠진(분열된) 적대의 벽을 허물고 '시중드는 자'로서 시범과 영광을 보여주신 예수의 길을 따른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경청과 안전한 공간'을 형성한다. 꼬리표(태그)를 붙이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금기된 질문'은 없다. 교회는 '의심을 거친 믿음'을 격려한다. 교회와 일터 및 사회를 제대로 재구성 하기 위해 해체할 것은 한다. 경청의 기본이 되는 공감도 배우고 익히면 증강되는 기술(skill)이다.
교회는 대외적으로 '모두'가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연습한다. 교회는 만인 제사장직을 넘어 ‘만인 예언자직’을 실행한다. 교회는 '땀의 가치가 존중 받는 사회'를 원한다. 청년세대의 '주거 불안'은 자산불평등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우리 사회의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다. 교회는 '불로소득의 부동산공화국'을 반대하고 '반투기동맹'을 지지한다. 교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부응하여 하나님의 선교(세상과의 직면)에 참여한다.
불평등의 문제는 '문명적 차원'을 가진 그 사회의 정신을 반영한다. 평등이란 인간다움의 완성을 지향하는 사회성에서 나온다. 우리가 '불평등이라는 종교'에 빠지게 되면 상위 10%는 물질주의적이 되고 중간층은 천박해지며, 빈곤층은 야만적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놀랍게도 '영구기관'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불평등의 현실주의'는 불평등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 현실로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불평등을 개인의 능력과 계획의 실패로 치환하려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불평등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어찌할 수 없는 유일한 현실이 아니다!
갈 3:28을 더 깊이 묵상해 볼 때, 기본소득이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보장해 주는 것이다. 소명을 발견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의 주권'을 회복해 준다. 단지 ‘재원의 문제’로 축소하면 안된다. 복지 차원의 지원금이 아니라, 인간으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자 '주권'이다. 갈 3:28에서 바울의 공동체 사상은 '노나메기' 즉,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