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회복의 맛보기>
교회는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Small Boat Big Sea)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재창조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모든 피조세계(萬物)는 탄식하고 신음하며 회복을 대망(大望)한다. 교회는 엡 1:10을 믿는다. 이 본문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도 안다. 선교는 세상(자연세계)과의 직면이다.
<평.화.의 복음>
죄와 사망의 법(지배)은 세상을 분열하고 단절시킨다. 민족이라는 것으로 나누고 남성(여성)이라는 이유로 편 가르고, 돈과 계급으로 분리한다.
평화의 복음(엡 6:15)이 없거나 듣지 못하면 평화의 길을 알 수 없다. 평화(샬롬)는 전쟁이 없는 상태이며 기울어지거나 찌그러지는 일이 없다.
화해의 복음은 뒤틀린 관계가 정상적으로, 잃어버린 상실로부터 원만하게 복구된 관계의 재형성이다.
<먼저 온 미래>
적대의 견고한 분열의 장벽이 깨어지는데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평화와 화해의 복음을 맛보아 알게 된 교회는 '낯선 자(이방인)의 비밀'을 중요하게 다룬다.
온전한 자신(참나)을 아는 곳에 남(타인)을 향한 움직임과 지향이 계속된다.
고아와 과부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희년 사회의 정상 여부 지표였듯이, 양극화와 불평등 속에서 '서로 돌봄의 전방위적 상상력'은 새로운 시대 정신이다.
<다양성의 조화로>
하나님 나라는 감사와 선물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곳이다. 교회는 세상의 구원을 앞당겨 경험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하나됨은 다양한 선물(은사)을 어떻게 선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뱃머리요 길잡이다. 바울의 하나됨에 대한 강조는 왕성한 은사 발휘가 자칫 공동체 파열과 독점화 방지에 있다.
다양한 은사와 원함의 능력은 각자 따로 노는 무례(無禮)가 아니라, 지체와 낯선 이를 세우고 이들이 성숙한 사람이 될 때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다.
<빈들의 소리>
교회는 하나님의 대안적 공동체로서 사회에서 은밀하게 기획되는 어둠의 악행을 꾸짖고 드러내는 일을 해야 한다.
책망(expose)의 효능은 진실의 빛을 받은 곳마다 판단을 받아 회개의 합당한 열매로 새로운 길을 가도록 돕는다.
퇴행적인 제의적 기독교에서 예언자의 목소리가 나올 수 없다. 애통과 희망의 예언자적 상상력이 절실한 시대다.
주의 백성이 시온으로 돌아오고 행복을 되찾는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다시 한번 알리셨습니다.
메마른 곳을 샘터로 만드시고, 황무지에 크고 정결한 길을 트셨습니다.
길가의 승냥이까지도 행복하게 만드신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즐거워합니다.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되찾으셨고 건지셨다는 승전보에 벅차오르는 마음과 감사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