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신앙의 노래>
일명 ‘바다의 노래’는 해방을 노래한 이스라엘의 국민 가요이자 해방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기에 두고두고 불러온 ‘야웨 찬미’의 노래다.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의 새로운 사회를 주신 이는 누구인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나는 나다)로 소개한 하나님은 자유의 원천이며 자유의 농축액을 갖고 있는 분이다.
이 노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면모와 전모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소망할 수 있게 한다.
<미리암의 노래>
오늘 본문의 노래 출처는 미리암이 원조일 수 있다(출 15:21). '모세의 노래'가 오늘날이었다면 표절과 잰더 문제가 될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문화적 정황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미리암이 이스라엘의 형성 과정에서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임에는 확실하다. 따라서 모세의 노래는 미리암의 갈비뼈에서 나온 노래다!
<송영 없는 예언>
송영(Doxology, 영광송)은 예언자의 상상력을 촉진한다. 송영의 효력은 인간이 자유와 정의를 궁극적으로 열망하게 한다. 또한 우리가 자유와 정의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성취를 위해 존재함을 보여준다.
우리 시대는 맘몬과 소비주의를 예찬하도록 은밀하고도 노골적으로 조작된 매체들의 잡소리들로 충만하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자유는 잠식되었다. 송영을 들을 수 없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알 수 없다.
<춤과 해방된 몸>
소고(小鼓)치며 춤추는 곳에는 애굽의 제국 이야기를 거부하고 무효화하려는 해학의 발칙한 상상력이 퍼진다.
'위험한 춤'을 통해 애굽의 바로는 더 이상은 우리의 몸을 지배할 수 없음이 선포된다.
이제는 해방된 몸으로 자유의 실현을 목숨 걸고 이루어 내라는 준엄한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송영이 있는 곳에>
‘주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의 송영이 땅에 울려 퍼질 때, 사람들 사이에는 귓속말로 ‘애굽의 바로는 아닙니다’라는 새로운 개벽의 언어가 걷잡을 수 없이 전파된다.
송영이 흐르는 곳에 자비와 긍휼의 새순(새싹)이 자란다. 송영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현실의 언어를 깨뜨린다.
주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지 당신께 집중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담담한 은혜를 주소서.
주를 기다리다 우리 스스로가 낙담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주의 강한 능력으로 오소서. 주의 약함과 겸손함으로 우리에게 오소서.
모든 순간에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