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청과 공감적 이해(12-13)
경청은 귀담아들으려고 대화에 신경을 쓰는 태도다. 상대방이나 반대 그룹이 제기한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진지하게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자세와 예(禮)다.
경청하고 있다는 것이 몸의 언어로도 표현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는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긍휼과 자비)이 흐르고, 고답적이지 않고(겸손) 친절하며 기다릴 줄 안다.
공감적 이해는 타인의 처지와 형편 및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손상이 초래한 대인 관계의 어려움과 오해를 깊이 알고 헤아리는 것이다. 상대방을 피상적으로 알지 않고 마음을 많이 기울여서 이해하기 위해 알려는 애씀이다.
서로 용납과 서로 용서는(13절) 이런 공감적 이해의 열매다. 상대방을 알려면 나의 기준과 판단을 중지하거나 때로는 백지상태화 해야 한다.
2. 아가페와 샬롬(14-15)
구약에서 사랑은 헤세드(자비와 긍휼), 즉 언약적(신실한) 사랑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배타적이거나 독점적인 성격을 갖기도 한다(일관되고 진실한 사랑이 무시되었을 때 하나님은 질투 하신다).
예수님은 여기에다가 민족, 남녀, 계급을 뛰어넘는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했고 급기야 원수 사랑까지로 급진화 했다.
바울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아가페의 엣지한(예리한) 측면을 언급했다(고전 13:5-6).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na)로 대체하거나 완성해야 한다. 교회는 먼저 한몸됨으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샬롬을 증거한다.
교회는 샬롬의 메신저(대사)로서 올바른 관계(정의)에 기반한 평화(샬롬) 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올바른 관계는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다.
희년 사회는 정의로운 샬롬이 만개(滿開)한 개벽(새로운 천지가 열림)의 대동(大同) 사회다.
3. 말씀의 코이노니아(16-17)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공동체 안에 있어서, 먹고 마실 때마다 '서로의 입술에 두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령의 조명 속에서 작동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실 때, 온갖 지혜의 샘이 넘쳐서 서로 가르치고 상호 이끌어 주는(권면)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말씀의 공동체는 성령의 은사로 세워진 목자와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주의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입니다.
교회가 새로운 관계의 공동체로 성장해 가기 위해 각자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공동체적으로 형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