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체들의 사정 파악에 진심(19-20)
표리일체(表裏一體)의 사람 찾기가 심히 어려운 시대다. 집단주의가 퇴조하면서 자기애와 그 변이로써 관종(관심종자)과 인정욕구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고아원에 가서도 자기를 위해 사진을 찍는다. 생색내기, 공로주의는 '가짜 남'에 의한 '가짜 나'로 사는, '속은 나'의 다른 모습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희귀한 시대다. 교회도 수월한 가치를 놓치고 있으니 이런 사회 풍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자명하다.
바울은 분쟁의 어려움이 생긴 빌립보 교회에 급파하고 싶은 메신저(소식 전달자)를 디모데로 특정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형제자매들의 종합적인 상태와 처지(형편)를 '꾸준하게' 생각해 온 사람인지 아닌지였다. 바울은 디모데와 같이 오랜 시간 동고동락 하면서 '증명된 모습"(proven character, 연단)을 가진 사람을 원했다.
2. 전우이자 동지(25)
바울의 마음에 새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형제의 관계’를 통해 시작되었고, 함께 역경과 사선(死線)을 넘어 견고한 결속을 이루게 되었다.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 복음에 회심한 자로서 세계관의 회심까지 도달한 자를 말한다. 형제(자매)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그분의 찢으신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신 공통의 경험과 의식(意識)을 공유한 자들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진한 사랑과 오직 예수와 그의 나라를 위해서만 걸어온 용사들이다.
동지(同志)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같은 뜻을 두고 걸어가는 사람을 말한다(라틴어로 동지camara는 한(같은) 방의 사람들을 말한다).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동지란 하나님 나라가 모든 민족과 모든 영역 속에 임하고 관철될 때까지 혼신을 다해 애쓰고 힘쓰는 자들이다. 교회의 핵심적 선교는 '정의의 구현과 은총의 전파'를 위해 세상의 최전선에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 교회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교두보이자 최일선의 공동체다. 그래서 교회는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며 전우가 된다.
3. 자기 목숨 보존을 경시함(30)
십자가의 도(道)는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명을 다른 이들을 위해 줄 때 생명은 전이되고 번진다. 자기애 속으로만 미치도록 경도된 시대일수록 타인을 향한 '주체적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타인이 없는 사람은 자유도 없는 법이다. 지옥은 자기 밖에는 아무도 없이 죽어가는 곳이다.
오늘 한국 사회는 배부른 돼지처럼 사육되고 있고, 사유와 성찰을 빼앗아 버렸다. 이런 '가축화 사회'를 이기고 극복하는 힘은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처럼' 십자가 신학의 더 깊은 곳으로 ‘밀알의 도리’를 온몸에 담고 사는 길 뿐이다. 우리는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오래된 신비'의 가치를 믿는다. '하늘이 간직해 둔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의 헤세드가 깃들고 밀려온다(27절). 모두(교회)의 근심이 잠시 멈추고 기쁨이 퍼진다(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