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성경을 봤을 때는 지나쳤거나 그 중요성을 몰랐는데, 다시 읽을 때 특정 본문에 꽂히거나 그 말씀이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컨텍스트가 주는 힘이자 새로운 컨텍스트에서 나오는 새로운 질문의 신박함이다. 삶의 자리(컨텍스트)에서 성찰과 질문이 깊어질수록 성경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공부가 쌓여 갈수록 본문을 발굴하여 오늘의 상황과 연결 짓는 일도 쉬워진다. 나의 말씀읽기 수준은 어디에 있는가?
이사야 45:8을 집중하고 반복하여 질문을 가지고 읽어 보라. 뭐가 보이는가? 성령의 조명하심이 작용하고 있는가? 나의 관심이 있는 곳에 성경의 본문이 머물게 된다. 자신이 고민한만큼 성경의 본문은 보이거나 들을 수 있다. 현실의 문제의식이 없으면 성경은 밋밋하고 틀에 박히고 나(교회)와 아무 상관없는 요원한 얘기로 머문다. 하나님 나라가 땅에서도 이뤄질 것에 대한 희구와 열망으로 세상의 변화를 궁리하며 성경을 읽는다면, 말씀이 새롭게 다시 보이는 경험을 할 것이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 경험'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뒤틀린 태도'를 살펴 봐야한다. 하나님에 대한 냉소와 불신에 기초한 불평 및 힐난이다(9-11절). 이런 것들은 자기 상대화(성찰) 없는 유치한 원망이다. 이스라엘은 희년 없는 사회를 만든 장본인들이었고, 그 댓가로 쫄망한 원인을 하나님으로 돌린다. 말씀의 민족이 토라를 듣지 않고 주변 나라 따라 하다가 토라의 원칙대로 심판을 받은 것에 대해 성토한다.
땅을 만들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페르시아(바사)의 고레스(키루스 2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13절). 이스라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고토(故土)로 귀환할 것이다. ‘정의로서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리더십은 시장에서 소외와 사회에서 배제가 제도적인 차별로 고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청년고독사는 교회의 최우선적인 청년선교다. 진정한 지도자는 '다차원적인 불평등의 장벽사회'와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은(사 45:21하) 당시 근동 신들의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탁월한 브랜드를 가진 신이다. 야웨 하나님은 우리를 우상숭배로부터 '자유의 삶'으로 이끄신다. 맘몬(財神)에 붙잡혀 탐욕과 집착의 노예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와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맘몬(재물신)이 된 부(富)는 소유하지 못한 사람의 '기분을 건드리기' 때문에 상실감이 크다. 과도한 부, 편중된 부가 문제다. '성숙한 물질성'의 회복이 절실하다!
우리가 ‘정의로서의 구원’을 믿고 내재화한다면 부끄러움이나 욕을 받지 않을 것이다(17절). 한국은 G8에 초대받을 만한 수준이 되었다. K-방역이니 K-팝 등 K로 시작하는 것들이 계속 늘고 있다. 열강 속에 짓밟혀 온 2천년 역사 가운데 지금이야말로 수치를 씻김 받는 시간이다! 내치(內治)에서 반드시 긴 호흡으로 바꿔야 할 것은 '개인의 노력을 무력화'하고 있는 울분사회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 정치/경제적으로 냉소를 만든다. 청년이 낙망하면 위험한 사회가 된다. '동등한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