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분별과 절제다(1-3절). 대통령보다 더 높은 사람과 식사 초대를 받았다 하더라도 숙고하고 분별해야 할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기울지 않는 지혜의 절제된 훈련이 있어야 한다. 진수성찬과 별미가 올라왔어도 의도와 목적을 간파하고 있어야지 휘황찬란한 만찬의 분위기에 도취되면 안된다. 애초부터 속이는(꾀려는) 음식이었다면 그 파티(관계)는 가지 않는 것이 낫다.
리더(지도자)의 길은 철학과 사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외롭고 좁은 길이다. 지도자는 부자의 길을 가려고 한다면 리더는 포기해야 한다. 리더는 공익(公益)으로 무장되어 무시로 공동선 구현을 위한 몰입과 지향으로 충만할 때 존경을 받는다. '무상(無常)의 도리'를 안다면 부(富)는 한 순간에 없어질 수 있고, 날개를 달고 사라질 수 있다(23:4-5).
이기적이고 인색한 자와 식사는 소화불량 되기 쉬우니 고도(高度)의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가 되는 과정에서 이런 부류의 부귀(富貴)를 가진 자들과 만남은 불가피하다. 청탁과 의도를 드러내고자 갑(甲)이 개최한 만찬은 일방적이거나 을(乙)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심지어 슬기로운 제언도 기각되는 현실을 반영한다(23:6-9). 1980년대 대통령 조찬기도회는 교회가 분별력을 잃고 불의한 권력을 합법화 해 준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성장과 번영에 물들어 '진실 비대면'으로 굳어져 갔다.
리더의 사회적 책무는 사지(死地)에 몰린 약자를 우선적으로 돕는 일이다. 강자에 의한 힘의 남용을 최소화 하고, 약자의 것을 불법으로 빼앗거나 권력을 악용하여 재산 증식하려는 것을 막는다(23:10-11). 청년부부주택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심정으로 목숨을 걸고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청년주거를 담보하여 출산과 육아를 거리낌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전을 구현할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지혜는 훈육(discipline)이다. 교회는 평생 배움을 촉진하는 기지다. 어리석고 거만한 자는 배움을 싫어한다. 지혜를 구하는 자는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뭐든 들으며 배우려고 한다. 게으른 자는 듣지 않고 찾지 않는다. 훈육을 통해 매사 어떤 과제 해결을 궁리하고자 애쓰고 용쓰는 지성을 키운다. 어릴 때 나태와 안일함은 체벌을 통해 마음을 깨우고 몸을 연습시킨다. 지정의체(知情意體)가 게으름으로 굳어지면 스올(지하세계)에서 나올 수 없다(2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