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을 직접 봄(visio Dei)
죽음에서 우리는 자기 삶의 심오한 신비인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는 죽음 이전에도 하나님을 만난다. 열망, 행복, 애원, 슬픔, 좌절에서도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나 죽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결정적이고 영원하다. 감추어 계셨던 하나님은 죽음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신다. 죽음은 비참, 고통, 무력함이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안전과 미래를 찾으려는 자는 하나님의 품으로 영원히 받아들여진다는 확신이 있다. 이런 교회의 신앙전통을 지복직관(至福直觀, visio beatifica)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위험에서 해방되어 생명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영원히 죽음조차 넘어 하나님의 얼굴 앞에 머무른다는 의미다.
2. 모든 것이 드러나는 심판으로서의 죽음
심판은 모든 것이 전부 드러나며 밝혀지는 사건이다. 은밀하고 은폐된 행동들, 결코 발설된 적이 없고 알려진 적이 없고 판단받지 않은 것들이 모두 다 드러난다.
죽음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를 처음으로 완전히 선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죽음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진리(진실)와의 만남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심판/판결한다.
죄의 파괴력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의 교만, 지배욕, 무절제는 인간 영혼을 파괴하고 자연 환경을 파괴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불의와 악을 보시고 그냥 모른 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공격이자 하나님의 작품을 짓밟는다. 심판의 분노는 정의가 목적인 세상을 다시 세우려는 하나님의 의지다.
3. 정화와 변모
죽음에서 맞닥뜨리는 심판은 우리 안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정화하며 치유해 준다. 우리 안의 이중성과 직면하면 몸서리가 쳐질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누가 있을까? 하나님은 피조물의 정화와 변모를 원하신다. 우리에게 정화는 끔찍한 아픔이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도 된다.
하나님은 처벌하는 분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처벌한다. 지옥은 자기 밖에 없는 자가 자기애 속에 쌓여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에게 부활도 없고, 하나님과의 최종적인 만남도 없다.
인간은 죽음에서 마침내 자신이 이미 늘 보기를 갈망했던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선다.
죽음은 힘을 잃음, 내려놓음, 모든 것을 내맡김으로 영원한(본질적인) 생명과 온 삶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