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산 길>
육신의 길은 '자기 중심적 욕망'으로 탐욕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기적인 욕심추구의 말로(末路)는 죽음이자 심판이다.
'옛 아담적 실존'은 자기 밖에 모르며 타자(이웃과 자연)를 자기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악인에게는 샬롬(조화로운 평등적 관계)이 없다.
두 번째 아담(예수)의 길은 '자기 포기적 수용성'을 통해 겸손을 허리에 두른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을 누리고 있는 자는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며 참여한다.
<성령의 인도>
하나님의 아들(대리자, Agent)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생명의 숨결)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분명하게 안다.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불기둥과 구름기둥 안에 거하였듯이, 매 순간 어떤 자리에서도 생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새기며 산다.
일상과 일터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함이 널려 있지만 세상의 거룩(대동사회)을 향한 성령의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존재에서 나오는 소리>
우리는 신의 대리자요 자유인의 아들(딸)로서 비굴한 노예적 굴종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로마사회에서 장자권은 독점적 지위를 갖으며, 아버지를 마주 대하며 친밀한 독보적 관계를 누린다.
내밀하고 확신에 차서 ‘아빠 아버지’를 부르짖는 것은 단지 기도의 자리에서 뿐 아니라, 일상과 일터 그 어느 곳에서도 단을 쌓았던 아브라함처럼 신적 임재로 충만하다.
<성령의 알려주심>
악과 고난이 끝장나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가 심신(心身)을 다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살아가노라면, 하늘은 위기 때마다 우리를 엄호하고 계속 지원할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성령)께서 날마다 고비 때마다 우리를 강력하게 돕는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첨병임을 확인해 주신다. 우리(교회)가 하나님 나라(통치)의 대리인으로서 사명적 부름을 받았다고 확인해 주신다.
<고난에 참여함>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신선한 표현'이다. 교회에게 주신 영광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 '담대함과 큰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적고 힘 없는 무리들이 보유한 비밀 병기다.
약함과 힘의 포기(非武力) 즉, 선으로써 악을 이기고자 하는 태도는 교회에게 주신 위대한 특권이다.
예수는 죽음으로써 죽음을 무력화 하셨다.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한다. 교회는 십자가의 영광, 고난의 면류관을 터득한 전위부대다.
주님, 우리는 당신의 신실한 백성이 되겠다고 기도는 합니다. 아무튼 당신을 몸과 마음 다해 사랑하겠다고 고백도 합니다. 심지어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수도 있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처럼 영혼없이 말하거나 조건을 달지 않으십니다. '아니'라고 말하지도 않으시고 '그렇다'라고 말하십니다.
당신은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모호하지 않고 신뢰할만한 답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