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만남>
사울은 사냥꾼으로 강하고 공격적인 반면에, 다윗은 사냥감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도망자였다. 그러나 오늘 장면은 극적인 반전이다.
사울은 동굴에서 다윗의 처분에 자신을 맡겨야 했다. 성군(聖君)답게 다윗은 피를 흘리지 않고 사울의 목숨을 보전했다.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벤 것은 사울의 미래가 닫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절대 우정의 관계였던 요나단의 헤세드 청원에 대한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삼상 20:14-17).
<다윗의 연설>
다윗의 순전함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신실한 인내의 기다림'을 알았다. 앞으로 사울은 스스로 자신을 망가트릴 것이다.
다윗의 목소리는 강력한 극적인 호소다(24:8-15). "나는 매국노도 반역자도 아닌데 사울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사울의 추적은 끝나야 하고 나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말한다. 사울은 다윗의 의로움을 인정해야 했다.
<사울의 울음>
사울은 상심과 애틋한 정에 사로잡혀 소리 높여 울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든 '기름부음 받은 자'인 다윗의 실체를 무섭게 직면했고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도 봤다.
사울은 신실하지도 유능하지도 강력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 비극으로 가득찼고 실패한 인간이었다.
사울의 울음은 다윗에게 항복을 의미하였다. 사울은 다윗의 권위를 인정한 최후의 사람이었다(24:20).
<나발>
나발은 큰 부자였지만 오로지 재산을 지키려고 살아온 자다. 그는 완고하고 악하며 하나님 없이 자율적으로 살았다. 이웃이나 사회(공동체)도 안중에 없는 사람이다.
나발은 원하는 것이면 다 하려고 했고,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웃을 존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에게 이웃을 돌본다는 것은 약자의 논리였다.
나발의 눈에 다윗과 그의 무리들도 하찮은 자였다. 나발은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그를 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대신해서 보복하셨다.
<아비가일>
다윗은 하나님의 강력한 약속을 믿을 것인가, 힘을 더 사용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아비가일은 총명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했다. 그녀는 남편과 남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신중한 행동을 했다.
다윗의 동반자로서 아비가일은 뛰어난 과감성, 상식, 효과적인 언어 구사력을 가졌다. 그녀는 지혜로운 분별력과 정치적으로도 유능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제안을 수용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복수심이 미래의 왕으로 가는 길에 위험하다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복수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준 아비가일에게 세 번씩이나 격찬하고 감사했다(25: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