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지혜로부터 오는 혜택(반추. 기억. 복기)이다. 감사의 원천은 상상력이다. 게으른 자는 사유와 성찰이 없고 상상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른다. '새로운 상상력'은 나를 넘어 타인과 그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더 헤아려 보고자 하는 숭엄한 노력이다.
금전(金錢)에 대한 지식(원리와 속성)을 궁리(공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돈 벌기만 원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19:2). 매사에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자산의 증가는 미련한 자에게는 비켜나갈 수 있다(3절). 돈이 있으면 우정의 네트워크도 확장된다(4절). (물질을)나누는 삶을 선호하는 자에게는 사람들이 붙고 존경을 받으며 추종하는 자들이 많아진다(6-7절).
잠 19:5절에서 거짓 증인(僞證)은 진실 규명을 송두리째 빼앗는 사회적 대죄다. 돈과 권력에 의한 위증죄(僞證罪)는 사법정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지혜를 구한 이유는 공정한 재판(사법제도)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 유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기 때문이다.
거만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모든 조직에서 위협이 된다. 말씀(法道)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살피거나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19:16). 이런 자들의 길은 죽음에 이르고 재앙을 당한다. 거만한 자의 행태는 사회적 손실과 민주적 사회를 파괴하기 때문에 정의로운 질서(조화)를 위해서 강력한 교정(矯正)이 필요하다(때리고 견책하라, 25절). 사법적 심판과 사회적 채찍을 가해야 한다(29절).
지혜궁리와 지혜수행을 증강하려면 잠언 19:20절과 27절을 부단히 반복해서 수련해야한다. 배움을 멈추면 마음에 육체의 소욕이 똬리를 튼다. 공동체 없이 따로 놀면 자기 욕망으로 충만해 진다(18:1).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책임감'은 아름답다. 자신의 삶의 조건에 묶여있지 않고 다른 삶(세상)을 꿈꾸는 '돌봄의 전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잠 14:31, 19:17). 코로나 팬데믹은 취약 계층의 삶에 직격탄이 되었다. 교회는 자기돌봄을 넘어 '남 돌봄과 남 배려를 사회적 가치로 당연화 하는 일'에 시범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