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스위스 바젤 교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최후의 만찬
<그분의 이야기>
기억과 회상은 향수(노스탈지아) 그 이상의 무게와 힘을 갖는다. 삼위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그분의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예수의 모든 이야기 속에 흐르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향한 도리와 이치를 집요하게 곱씹고 반추한다. 예수의 이야기는 어제를 넘어 우리의 오늘 속에도 깃든다.
<일용할 양식>
교회는 주기적으로 예수와 하나님 나라 복음을 기억하고 회상하도록 초대받았다. 성찬의 '복된 일상화'는 우리가 식사 때마다 그분의 이야기를 짧게라도 포착할 수 있게 한다.
밥을 먹는 것은 하늘에서 이뤄진 뜻(의도)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우리를 위한 신비로운 은혜다.
'하루분의 필요한 음식'만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베푸심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서로 나눔>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한다는 것은 남을 향해 나누는 것으로 나타난다. 서로 나누는 것은 세상으로 보내어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시간'을 살려는 순종의 노력이다.
성찬은 세상으로 파송하는 '사명 수여'로 그 절정(climax)을 이룬다. 예수의 식탁은 '모두가'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두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고 강화한다.
성찬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특정한 사람에게 독점되어 있는 것을 ‘뛰어 넘으려는’(pass over) 유월절의 영광이다.
<도를 전하기>
교회는 그때 예수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고 언젠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통치의 때를 앞당겨 가져온다(26절).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것과 다르게 살아가려는 것은 같은 말이다. 복된 소식에는 새로운 왕이 등극했고, 사람들은 물건을 나누며,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대우하는 등, '남다른 일'이 일어난 것을 포함한다.
복된 도리를 받고 사랑에 휩싸여 모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실제적인 사건이 바로 아가페다.
<먼저 온 미래>
'걸어 다니는 하나님 나라'였던 예수의 삶과 죽음 및 부활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신 세상이 마침내 드러났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통해 전진해 오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미리 맛본다. 성찬은 하나님의 미래로부터 온 성령이 우리의 낡은 현재를 새롭게 하고 있음을 맛보는 '시식코너'다.
부활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대동(大同)의 개벽을 향해 멈추지 않는 행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