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밖 신앙
(히 13:10-14)
<더 나은 것을 선택>
기독교 신앙은 안주하려는 현상유지의 행습(行習)을 극복하려는 진지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제의적 종교로 축소, 전락하지 않도록 성찰한다.
고난과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본질이 아닌 것을 붙잡거나 의존하려고 한다. 그러나 '큰 구원을 경험한 자'라면 초인(超人)의 정신으로 즉, 예수를 깊이 생각하여 일체 다른 영적 피상성에 현혹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걸어 가셨던 길에 집중하여 이 길만이 유일하고 최상의 것임을 붙잡는다.
<새롭고 산 길>
히브리서에서 천명한 '더 나은' 예수 구원의 길은 하나님의 모략이 낳은, 예상을 뛰어넘은 '새로운 신비'였다.
예수께서 초대하는 길은 생명을 계속해서 얻고 더 얻는다.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창의적인 추동을 지속적으로 맛보아 살아가는 길이다.
새롭고 산 길은 죄와 사망의 낡은 것과 결별하는 시간이다. '무의미라는 불행'과 싸우는 자리다.
<믿음으로 계속 살아감>
믿음의 영웅들은(히브리서 11장) 처세와 자기 실리 추구의 유혹과 위협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마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에 밀착하여(in Christ)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갔다.
이들은 믿음의 열매와 족적들을 남길 수 있었다.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예수를 의지하며 따를 때 반드시 믿음의 역사(열매)를 본다.
<대안 공동체>
하나님은 세상을 회복하고 더 새롭게 하기 위해 대안적 공동체를 통해 일하신다. 대안 공동체는 더 좋은 삶을 살아가는 샘플 같은 무리들이다.
빛으로 소금으로 제국의 이야기와 다른 생각과 다른 행위로 걸어간다. 세상은 하나님의 이야기로 살아가는 교회를 통해 구원의 길을 본다.
하나님은 대안 공동체를 통하여 제국의 모든 문법들을 해체하고 '새롭고 산 길'의 희년 세상을 펼치신다.
<애통과 희망>
대안 공동체는 무감각을 치고 들어가 우리가 죽음의 세력에게 두려워하고 종노릇하지 않도록 힘을 준다.
무감각 사회를 향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퍼붓고 있는 화와 분노를 똑같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애통과 탄식'으로 무감각을 그 뿌리로부터 잘라버린다.
고통과 죽음의 상태에 빠진 개인과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분노라기보다는, 같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일이다.
애통하는 공동체는 절망 너머로 '새롭고 산 길의 미래'를 세상과 나눈다. 낡고 지쳐버린 세상은 활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케냐의 어느 기도문>
새로운 진리에 도망치는 비겁함에서
반쪽짜리 진리에 만족하는 게으름에서
모든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에서
선하신 주여, 우리를 건져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