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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합일(天人合一)>
어떻게 후새의 제안이 승락되었을까? 유능한 전략기획실장(책사) 아히도벨의 전쟁계획은 기각되었다.
원래는 아히도벨의 책략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추앙되었고(삼하 16:23) 그의 제안이 ‘옳았다’고 했었는데, 고도의 위험이 뒤따르는 후새의 ‘전면전’ 계획이 최종 승인되었다.
우리는 17:14에서 숨겨진 키를 봐야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히도벨을 향한 기도(15:31)를 받으셨다.
후새는 다윗의 대리인을 넘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급부상했다. 마침내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은 드러났다.
<체계적인 조직화>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이를 위해 힘(전투력)과 용맹스러움과 전략이 전면에 나서야한다.
다윗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자산가들인 소비, 마길, 바르실래로부터 보급 물자 지원을 받는다. 이스라엘 밖의 힘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었다.
다윗의 군대는 세 명의 사령관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다윗은 조직(시스템)과 규모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포레스트 배틀>
‘숲속 대승전’은 압살롬의 최후 이야기로 정점을 찍는다. 다윗은 일차적으로 반란의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지만 쿠데타의 주모자인 아들은 손상되지 않기를 바랬다.
다윗은 공사 구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부담을 안고 ‘너그러이 대우하라’(18:5)고 거의 간청하듯이, 군인 의식으로 투철한 사령관들에게 부탁한다.
다윗은 부자(父子)의 관계성을 최소화 하고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에둘러 표현했다.
<무거운 슬픔>
하늘은 이 전쟁의 향방을 이미 확정지었다(17:14). 부자(父子)의 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다윗의 슬픔'은 승리로 다시 찾은 권력을 짓눌렀다.
'압살롬의 걸림'은 예상치 못하게 발생했고 그 과정은 모호하게 묘사되었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댕그러니 걸려있다. 생명과 사망 사이에, 정당한 판결과 아들로서의 가치 사이에서 하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거친 군인 요압은 총사령관으로 ‘나는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고 말한 후 투창으로 압살롬을 죽였다(18:14). 아들의 죽음은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었다.
<명석한 강인함>
나라 전체가 슬픔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을 때, 지나칠 정도로 공적이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성심 가진 요압이 등판한다.
요압은 전국민의 희생과 헌신으로 일궈낸 승리가 보장해 준 왕국의 안전을 중시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으며 반역자를 더 귀하게 여기는 다윗을 질책한다(19:5-7).
요압은 다윗에게 왕궁 발코니에 모습을 보이시라고 최후의 통첩을 한다. 다윗의 공적 모습이 재개 되었고 나라는 안녕(샬롬)을 되찾았다.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주권을 잊고 스스로 자율/독자적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 자신과 가족 및 이웃에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며 살 수 있을지 서로 나눠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