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자에 대하여 대조하는 표현 방식으로 길게 묘사하고(1-12절) 게으른 자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표현한다(13-16절). 오늘날 지식으로 충만한 시대 같으나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사람으로 빠져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죄는 무지와 어리석음이다. 확증편향이나 선택적 정보도 인간을 어리석게 하는 요인이다. 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이며 선진사회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지혜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지만, 분별력 있는 현자나 왕들에 의해 알려진다. 현자가 깨달은 지혜의 가르침 속에 하나님의 임재와 실재가 있다. 하나님의 임재(현존)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명철과 공의를 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형통과 기름진 것을 제공하신다. 지혜로운 의인들에게 하나님의 현존은 마치 '분배된 정의의 보관소'와 같다.
미련한 자들과 게으른 자들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 우매자는 하나님께서 사회적인 질서를 세우고 인생들에게 안전의 근원이 되는 것을 모른다. 정의는 하나님의 섭리(창조된 세상을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것)를 통해 인간사회에 실현된다. 지혜궁리와 지혜수행을 통해 지혜가 꿈꾸는 세상 즉, '조화로운 정의'가 작동하는 사회가 구현된다.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제의적 종교가 우매자를 양산한다. 우매자가 된 것은 믿음의 초보에 머물러 버렸기 때문이다(히 5:11-6:2). 머리를 써서 분별하는 지성을 연마하지 않았다. 진정한 지혜자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한다면 부지불식간에 악인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미련함과 우매함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시장의 우상’에 빠졌다. ‘남들이 뭐라고 하니까, 다들 이렇게 말하더라’ 하니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믿는다. 둘째, ‘오십보백보의 망령’ 아래 빠진 사회다. ‘둘 다 똑같은 것들이야’로 치부해 버린다. 사안의 경중(輕重)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가치에 대한 공부와 성찰이 일천하니, 변별력이 취약한 사회이며 선택적 정보만 수집한다. 공익적 가치는 '천하위공'(天下爲公)에 기반을 둔다. 하나님은 공공(公共)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