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의 독특함은 찬양과 탄식, 성찰과 기도, 우울(저조)과 소망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두터운 깊이로 비관적인/성찰적인 언어들을 사용해 사멸하는(mortal) 존재인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울함의 무드를 허리우드식의 피상적인 해피핸딩으로 처리하지 않으려 한다. 죽음을 아는 유일한 포유류인 인간으로서 모두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비장함으로 기술한다.
얄팍한 낙관주의자들은 오늘 본문이 견지하는 성찰적 전망(바라봄)이 드러내는 어둡고 우수적인 회색 빛깔의 저음 소리를 힘들어 할 수도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에 대한 덧없음(人生無常)과 불행을 회피하지 않고 성찰해 낸 지혜를 나누려고 한다. 영혼 불멸이란 카드를 꺼내서 인생에 관한 진상(眞相)과 진리를 숨기거나 호도하지 않고 인간이 처한 상황을 진지하게 다룬다. 관념적이거나 형식적인 위로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편 90편 1절은 찬양의 언어로 시작한다. 인생의 덧없음(무상함)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언급한다. 인간사의 밑을 보기 전에 위를 본다. 인간의 불행에 대한 성찰에 앞서 하나님의 위엄을 나눈다. 우리가 허무, 염세, 비관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위에서 아래로 봐야 보이는 것이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어설픈 염세/허무주의자들은 인간의 유한성과 불행 및 비극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과 죽음의 문제는 쳇바퀴를 돈다.
'필멸'의 인간은 '불멸'의 하나님을 염두할 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일시성에 대한 성찰을 촉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성이며, 인간의 불행과 비극을 살필 수 있는 기준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이다.관찰된 무상함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시 90:1절부터 4절까지 주님에 대한 찬양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우울과 비관을 해석해 줄 최종병기다.
산들이 태어나고 죽더라도 하나님은 계신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사변과 관념이 아닌, 현실을 꿰뚫어 보는 근거와 힘이다. 인간의 죽음도 자연의 법칙-흙은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에 종속시켰다. 인생이 짧다는 이치를 터득한다면(시 90:4-6절, 10절)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유의해야 한다. 우울(헛됨)을 쉽게 간과하여 감상적이고 천박한 기쁨에 빠지는 것, 자신의 슬픔을 진지하게 직면하지 않으려고 탐욕스러운 집착을 하는 것, 인생의 비극적 측면에 너무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7-8절에서 중대한 포착을 한다. 인간의 죄책과 하나님의 진노다. 인간은 자연의 질서(창조의 질서) 때문에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우리의 죄로 인해(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시인이 발견한 삶의 이치다. 하나님의 진노는 삶의 질서를 왜곡시키려는 인간의 교만과 오만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징벌이나 복수라는 폭군의 격노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맞서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혼돈과 무질서에 대한 재정립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정상화다. 우리의 상황, 일시성, 죄책에 대한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시 90:12) 영원할 것처럼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없을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 진리에 대한 깨달음(터득)은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된 안전이나 냉소주의로 도피하려는 것을 막아 준다. 지혜로운 마음은(12절) 자존감, 겸손, 불굴의 마음을 갖고 인생의 무상함에 대하여 견딜 수 있게 한다.
시 90:13-17절은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난다. 지난 시간들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의미,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기도, 미래에 있게 될 행복과 기쁨, 하나님의 임재 및 우리의 일상과 일터에서 부요함(번영)을 구하는 기도다. 불행의 시간들이 지나면 성취의 시간들이 온다. 희망이 비극을 대체하고 계승한다. 우리는 비극과 희망, 과거와 미래, 진노와 자비 사이에서 살아간다.
16절은 새로운 존재로서 우리가 새로운 경험 속으로 걸을 수 있도록 간구한다. 이 둘 사이의 간(間)존재인 인간에게 쉬운 답이나 영적인 안전과 보장을 빨리 기대하지 않게 한다. 비극과 희망 중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 승리는 비극과 희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승리는 13절에 하나님을 우리의 지금 여기로 오게 하는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오시게 하는 기도는 우리 시대 우리의 기도이며,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서 드리는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