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들림>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논평은 의외로 특이하다. 나사로의 죽게 될 중병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 영화롭게 될 계기가 될 병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사로의 위중한 상황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바치는 계기가 되며, 그 결과로 전적 순종을 드린 아들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십자가의 들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화롭게 된다.
<전조>
나사로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을 알리는 지시등이다. 나사로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을 내다보고, 예수의 부활은 이스라엘의 영적 갱생과 새 언약을 보여준다.
나사로는 병들어 죽게 된 이스라엘이며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죽은 자들이 예수의 음성을 듣고 부활할 것이라는 요 5:25-28의 예언이 최초로 성취되는 현장이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사적 친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복음에 동참한 영적 동지였다. 나사로는 기존 종교권력의 관할구역에 살면서 예수와 접선하는 길벗이다. 그의 누나들도 유대인 구역에 살지만 실상은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와 연결된 전우들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유대로 다시 가기를 원치 않았다. 제자들은 ‘돌로 쳐죽이려는 그들의 살기’를 처절하게 느꼈다(10:31, 33).
예수는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었고, 이런 작은 사랑이 누적되어 마침내 십자가의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었다.
<권능의 생명>
예수야말로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고 죄는 하나님과 맞서려는 자기 중심성으로 살려는 자기 폐쇄적 삶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언약적 연합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일하다. 예수는 하나님과 연합을 통해 깨져 죽음으로 떨어져 나간 자들을 하나님께 회복시키는 의미에서 부활이다.
<부활을 살라>
자연 파괴는 끝도 없이 자행되지만 자연 스스로의 치유력과 자기 복원력은 죽음보다 부활이 더 강력함을 보여준다. 원래 부활은 창조 때부터 주시기로 작정한 선물이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따라 생화학적 생명을 불멸의 가치와 선을 위해 거룩하게 소진한다. 따라서 우리의 죽음은 징벌이 아니라 상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죽는 마음으로 힘을 다하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