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15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결정적인 사건이 공개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봇물처럼 터졌다. 인간에게 있어서 비극과 비참은 ‘하나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관여하고 살펴 주시는 새 판, 고도의 신성한 관계가 찾아 온 것이다. 은혜의 강타(high touch)는 돌이킴, 떠남, 버림 등의 질적 변이를 낳는다. 이 값진 특보(特報, Good News)는 철저한 투신과 혼신의 몰입으로 그분을 신뢰할 것을 촉구한다.
막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인간을 위협하는 내부의 주적(主敵)은 자신에 대한 거짓된 평가 즉,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다는 자기만족이다. 반면에 존재와 영혼에 대한 굶주림, 내면의 파산을 느끼고 관계의 힘겨움도 절감하며, 인생은 심각한 중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맘몬과 소비주의에 물든 무서운 절망 앞에서 ‘절박한 의존’의 목마름, 다그쳐진 각성의 확성(擴聲)을 듣는다!
막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자기 중심적 욕망(뜻)이 억제되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간다. 우선 순위를 새롭게 기경(起耕)하여 자기 기만으로 독점된 몰염치 구조를 갈아 엎는다. 회심은 오직 하나님의 원함 앞에 살고 죽는, 인생의 본질과 창조의 뿌리로 전향(轉向)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시로 자기 죽음을 겪는다. 혁신 인간(new man)은 폐쇄된 가족주의를 넘어 확대된 신적 가문의 영광을 지어낼 수 있다.
막 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좋은 땅이란 운명론이나 엘리트주의처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비옥한 토양이 되어 신적 생명의 풍성한 현시(드러냄)를 가져 올 수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말씀에 대한 경청, 간직함, 새겨둠이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듣고 싶은 것만을 욕망하는 거짓 종교의 시대에,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갈망과 ‘말씀 묵상’의 수련을 통해 일주일 내내 교회로 살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