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0:1-18
“당신은 어떤 권위로(위임받은 힘) 이런 일을 하는가? 이 권위를 누가 주었는가?” 덫에 빠질 수 있는 간계(奸計)한 꼼수 질문이다. 예수는 신성모독이라는 대죄로 기소될 수 있다. 예수는 신적 지혜로 세례요한의 권위에 대한 출처를 역질문한다. 종교권력자들은 모르쇠로 회피한다. 예수는 신적 권위에 대한 논쟁을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회답(回答)하신다. 예수의 권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다.
이사야가 부른 포도원의 노래(사 5:1-7)는 심판의 메시지가 핵심이다. 예수의 비유에서는 농부들(이스라엘을 관리하는 지도자)이 이스라엘을 차지하려는 의도로 예수를 죽이려는 죄를 범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을 멸하고 다른 리더십을 세워 새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권위를 폄하하고 훼손하게 될 때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눅 20:19-40
로마가 부과한 납세의 문제는 단지 세금(kensos, 인두세)을 내야하는 사안을 넘어 주권을 상실한 나라가 지배국에 내야 하는 세금(phoros)에 관한 논쟁이다. 지배국의 통치를 인정할 수 있느냐에 관한 물음이다. 당시의 이스라엘 지역이 로마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민감한 정치적 질문이었다. 납세 의무 반대는 로마 체제를 부정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릴 대답도 피하고 반로마 투쟁의 선동자로 고발될 소지도 없앤, 절묘한 말로 이 딜레마를 빠져나온다. 두 주인을 섬겨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하면서도 로마 제국을 폭력으로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하늘의 신적 지혜가 흐르는 시간이다!
사두개파 종교 권력은 친로마적이고 헬라적인 합리주의 경향으로 부활을 믿지 않았다. 사후의 생명, 천사나 귀신의 존재, 구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경(토라)만을 믿었다. 이들은 형사취수법(兄死取嫂法, 신 25:5)을 근거로 부활을 부정하였다. 부활이 있다면 일처다부(一妻多夫) 현상이 생기니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부활의 시대에는 천사와 동등한 부활의 자녀로서 존재할 것이다.
부활 논쟁의 백미는 눅 20:38인데, 하나님은 이 사람들 모두를 살아있는 자들로 봤기 때문에 자신을 언급할 때 이미 죽은 자들의 이름을 덧붙였다(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살았다고 '간주한' 것이기 때문에 부활은 실재한다고 논증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