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정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모습으로 오는 '때'에 관심이 많았다 .예수를 통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예수가 행할 심판의 날에 완성될 것이다. 심판의 날은 최종 결산의 시간이자 '정리(잘 버리기)와 정돈(다시 배열하기)의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 최종 시점)'다.
눅 17:20-37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방식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오지 않는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식으로 지리적이거나 공간적인 것도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예고하는 싸인(징조)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노아의 때처럼, 롯(소돔)의 때처럼 '번개'의 갑작스러움으로 올 것이다. '밤'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올 것이다(34절).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가 중요하다. 의인들에게는 구원으로 악인들에게는 심판이 임한다. 데려감과 버려둠이 핵심이 아니라, 의인이냐 악인이냐가 관건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추구한다. 악인은 말씀을 버린 자이며 하나님 나라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악인이 버려진 곳은 콘도르(독수리)가 모이듯 비참한 심판(결산)의 장소가 될 것이다.
눅 18:1-8
믿음은 그릿(grit, 집요하고 꿋꿋하게 결과를 얻어내는 자세)을 필요로 한다.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불굴의 정신으로 꾸준하게 기도하면, 불의한 판사라도 집요한 요청에 늦게라도 응답하듯이 '더더구나' 의로우신 하나님은 회보(回報) 하신다. 믿음은 확신(명령만 하셔도 치유될 겁니다), 발상의 전환(중풍 병자 치유를 위해 지붕을 뚫고 데려온 친구들), 장애물의 극복(큰 무리를 뚫고), 집요함, 담대함으로 나타난다.
눅 18:9-14
자신의 의를 확신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업신)하는 것에 대한 경고다. 나만이 옳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to himself)만 기도한다. 간구도 없고 하나님은 그의 안중에 별로 없다. 세리도 경멸한다(이 세리). 자기 자랑으로 충만하고 자신으로 채워져 있다. 세리의 기도는 자비와 용서를 구한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도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춰 죄인으로 여기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 세리의 기도야말로 이신칭의를 경험한 자의 기도다.
눅 18:15-30
하나님 나라는 어린 아이처럼 순전하게(single-mind) 받아들이는 자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 나라는 남녀노소, 민족과 계급으로 조건을 제한하는 법이 없다. 외형과 제의를 넘어 하나님의 통치(다스림)에 자신을 부복하고 심령의 가난함으로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산헤드린 회원은 영생 얻는 문제를 질문했다. 영생은 하늘에서 보화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결국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 관리는 얼핏 보기에는 진지한 신앙의 구도자였지만 예수는 결정적인 결함과 하자(瑕疵)를 알려준다.
이 사람이 큰 부자였다면 율법을 어기고 영구 매매나 반환 거부 등의 수법으로 토지를 과다 소유한 것이다. 계명을 다 지킨 것이 아니다.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한 열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다. 구원의 길은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면 된다. 예수는 부자가 구원받기 어려움을 말하신다(25절). 통념적으로 부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인데, 부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더더구나' 다른 사람들은 구원의 소망이 있을까?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부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도록 돕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버린 자에게는 지금 여기서 여러 배의 보상을 받는다(30절).